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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거창하게 비행기 타고 떠날 것도 아니고, 평소 가보지 못한 산으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홀로 떠날 계획이라 부담은 덜했다.

 

먼저 진주에서 서울로, 그리고 백담사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배낭을 챙겼다.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나는 버스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향하는 설레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언제나 함께하시는 예수님과 성모님께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손을 붙들어 주십사 청하며 환희의 신비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백담사 아래 용대리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마을에서 백담사까지 7.5km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려고 갔지만, 겨울철 비수기에 전날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붙어 버스 운행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청대피소를 예약해둔터라 백담사부터 정상까지 8시간 소요되지만 2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10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고행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여행에서 언제나 변수는 있는 일이라 여기며 아침 8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계곡물은 얼어 있고 그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길을 맨 처음 밟고 가는 기분은 상쾌하면서도 불안하리만치 완벽한 아침이다. 2시간을 걸어 오전 10시 백담탐방지원센터를 지난다.

영시암을 지나 12시에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오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설 때부터 무릎과 골반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오후 2시 쌍용폭포에서 사진촬영 중 장갑을 계곡으로 떨어뜨렸다.

살을 에는듯한 칼바람이 손등을 때리는데 스틱을 잡은 오른손엔 장갑이 없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동상에 걸린 듯 손이 아렸다.

어쩔 수 없이 배낭 깊숙이 넣어 두었던 비상용 장갑을 찾아 끼고 다시 오르다 보니 이런 악천후에 영시암에서부터 목적지가 같아 동행하고 있던 서울에서 오신 형님과 같은 동호회 자매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여기서부터가 해탈 고개야~”라며 웃었다.

무릎부터 배낭끈에 눌린 어깨까지 안 아픈 곳 하나 없는데, 올려다 본 해탈 고개는 깎아지른 듯 90도의 가파른 돌길에 눈은 허벅지까지 쌓여있고 맞바람은 태풍급으로 나를 못 올라오게 밀어낸다.

 

해탈고개 중간 즈음에 너무 힘겨워 잠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여기 절벽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악마의 유혹이 있었고, “안돼 정신 차려!” 하며 성호를 그었다.

역시나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엔 기도밖에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 절망적인 순간에 형님과 자매님은 벌써 다 올라가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입에선 연신 주모경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며 한발 한발 올라갔다.

500m의 해탈고개와 200m의 봉정암까지의 길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깨질 듯한 무릎 통증에도 오르고 또 올랐다. 1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가까스로 도착한 봉정암에서 형님과 자매님이 나를 보고

방금 두 분이 같이 올라온 거 아니었어요? 두 사람이 올라오며 이야기하는 소리도 분명 들었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형님께 잠시 쉬어서 가자고 말씀드리고 성호를 그으며 감사기도를 바쳤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이 부족한 저를 위해 미리 동반자를 준비해 주시고,

힘들고 지칠 때 저와 함께하고 계셨음에 감사드리나이다.”

 

이후 대피소까지 한 시간을 더 올라야 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대피소에 도착 후 이날 나와 같은 코스로 올라온 사람은 우리 세 사람이 모두였다.

긴장된 마음이 풀려서인지, 죽음의 골짜기를 빠져나온 안도감인지 모를 긴 한숨과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부터 고민하고 있던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라는 화두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대피소에서 밤을 보냈다.

 

그동안 성당에서 근무하며 가졌던 의무감과 부담을 모두 내려놓고 떠난 산행에서 눈밭에 넘어져 시계를 잃어버리고, 장갑을 계곡에 떨어뜨리고, 체력이 완전 바닥나고 서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평범했던 일상에 감사를 느꼈다.

아무 때나 성당에 갈 수 있고, 당연한 듯 성체를 모실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기도 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감사할 줄 모르고 나태함에 빠져 살아계신 하느님을 잊고 살았던건 아닐까?

 

다음날 이른 아침 대청봉을 향해 걸으며 나의 교만, 분노, 나태, 질투, 탐욕적인 마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모든 일상에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성령의 하느님, 성모님의 사랑, 또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온전히 느끼며 그 길 위에서 다시금 나를 돌아본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를...

 

 

 

 

                                            2026113()~16()

                                        눈 쌓인 설악산 산행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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